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원조 빨갱이 박통과 차지철을 한꺼번에..쓸어주셔서 하태경 '유시민은 차지철이 아니라

카테고리 없음

by 스트릿박스 2019. 10. 31. 06:41

본문

광복동까지 연결된 도로였는데 그 도로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군데 군데 군인들이 있었으나 감히 나서질 못해 으슥한 곳에서 거총하며 바라만 보았음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였음 당연히 당시 청와대는 김영삼 문제로 촉발된 부마사태를 두고 논의를 하였고 실세중 실세인 차지철은 무장 병력 증파와 함꼐 탱크등 중무기 투입을



목적으로 벌인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김재규 같은 인물이 몇 명 더 있었다면 김일성 측근 중에 김재규 같은 인물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히틀러 측근 중에 김재규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역사는 덜 참혹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기사] 박정희 쐈지만 그 무덤위에 설 만큼 타락하지 않았다. 김재규 “4월에 결행하려다 10월로



최대의 시민항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부산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인 10월 18일 이른 새벽에 부산계엄사령부에 도착한 후 현장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서울로 도착한 김재규는 사태의 심각성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질책만 받았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버럭 화를 내고는 "앞으로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 자유당(4,19)때는





아니라 대통령하고 나하고 둘이 그냥 같이 없어지자, 그렇게 해서 없앤다, 생각이었습니다. 변호사 예~. 김재규 여기에 건설부 장관 차를 타고 가는 그 자리가 바로 나하고 대통령 끝내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변호사 참~나. 김재규 그것이 1974년 9월14일입니다. 그다음에 75년 정월 27일, 건설부 장관으로 있을 적에도, … 그때부터 사실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245.html#csidx6f367bc14d7565bab23df676f404d29 - 1차 최후



연기” 김재규 유신헌법을, 이것은 반드시 개정돼야 된다, (1973년 3군단장 시절부터) 이렇게 생각을 했지만은…. (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으로 가고 난 이후에 잘됐다, 이 기회에 순리적인 방법으로 한번 대통령의 머리를 한번 돌려 보자. …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또다시 내렸습니다. 변호사 그렇게 내린 것이 언제쯤 내렸습니까? 김재규 그러니까 작년(1978년)…,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한 것은 작년 12월….





계층도 좀 봐 주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을 뽑는게 맞지요. 탕탕절이 13일 남았습니다. 탕탕절에 다카키 마사오를 사살한 장소는 바로 여깁니다. 청운효자주민센터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에 있는 이곳은 원래 안가가 있었는데 김영삼 정권 때 그것을 허물고 공원으로 조성을 했습니다. 다카키 마사오는 여대생 끼고



집권욕 아래에 두고 있던 분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자신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대통령 경호실장을 쏜 이유를 부마항쟁에 있다고 회고한 바 있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 함께 있었던 심수봉은 당시 상황에 대해 김재규가 차지철에게 권총발사 직전에 '건방져'라고 했으며, 박



20 43 74 검찰 유시민 협박중이네요 9400 25 26 75 [속보] 檢 4번째 자체개혁안 발표…'수사·공보 분리' 4669 40 30 76 이세계 근황.png 9306 25 27 77 저 지금 엄청 소름돋았어요.. 7106 32 0 78 19호 근황 7694 30 0 79 82년생 김지영 묵직한 후기' 에 대한 반론. 3497 42 8 80 일본 근황.jpg 8742 25 1 81 유시민 죽이기에



하는데 그 목소리가 총을 맞은 사람같지 않더라고 밝혔습니다. 또 한참 있다가 다시 부축하며 '정말 괜찮아요'라고 물었을때도 '나는 괜찮아'하며 버티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후 심수봉은 1주일동안 조사를 받느라 여기저기 불려다녔다고 합니다. 조사가 끝나자 그때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불러 가보니 금일봉을 주면서 '고생했다. 보약이나 지어 먹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시 심수봉은 전두환에 대해 무척 자상한 분이라며 감동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심수봉의





자막으로 장난쳤습니다 35911 75 303 11 유시민 저격하는 민경욱.JP9 28029 83 140 12 검언유착 -서초 주민이라던 분. : 자유당의 꼼수 28466 81 382 13 변호사 팽당했네요 36530 53 167 14 속이 뻥 뚫리는 뉴스를 선물합니다 촤~ 33331 61 312 15





댓글 영역